교리강해

소요리문답1 "인간의 최고의 목적"

소요리문답2 "유일한 규칙 성경"

소요리문답3 "성경이 가르치는 교훈"

소요리문답4 "유일하신 하나님"

소요리문답5,6 "삼위일체 하나님"

우리는 지난시간부터 하나님에 대해 배우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속성을 인간과 공유할 수 있는 것이 있고, 공유할 수 없는 것이 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공유하는 것을 공유적속성이라고 합니다. 어떤 것들이 있었습니까? 지혜. 거룩. 공의. 선함. 진실 이것들은 하나님이 가지고 있는 성품들입니다. 그런데 이런 성품을 우리도 갖을 수 있게 해 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성품을 공유함으로 인해서 우리의 모습들을 통해 하나님의 형상을 들어내는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하나님만 가지고 있는 비공유적 속성이 있었습니다. 무한하시고, 영원 불변하시는 것이 하나님입니다.

우리가 왜 하나님게 기도합니까? 무한하시고, 영원불변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왜 하나님을 믿습니까? 무한하시고 영원불변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런 하나님을 두고 다른 하나님을 찾으려고 합니다. 그래서 다양한 종교를 갖는 것입니다. 다양한 종교에서 그들이 원하는 하나님을 찾는 것입니다.

그런데 과연 그들이 찾는 하나님은 참된 하나님일까요? 이에 대한 답이 5번째 질문입니다.

5문 : 하나님 외에 또다른 하나님이 계시는가?
답 : 살아계시고 참되신 하나님은 오직 한 분 하나님 뿐이시다.

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를 “포스트모더니즘시대”라고 합니다. 이런 시대의 특징이 무엇이냐하면 “다원주의사회”가 되어버린것입니다. 다원주의 라는 것은 무슨 말이냐하면 절대 정답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 사람의 주장도 옳고, 저사람의 주장도 옳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아시다 시피 제가 카페를 운영한 적이 있습니다. 저는 손님들에게 많은 서비스를 제공했습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누기도 하고, 복음을 전하기도 했습니다. 한번은 도옥 김영옥씨 영향을 많이 받은 자매 두분이 오셔서 대화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제가 목사인 것을 알게된 이분들은 1시간이 넘는 시간동안 교회에 대한 부정적인 이야기를 쏟아 놓았습니다.

한시간의 그 이야기를 정리하면 이런 것입니다. 교회는 자기들만 구원이 있고, 하나님만이 유일한 하나님이라고 말하는 아주 나쁜 집단이요, 독선적인 집단이라는 겁니다. 그러면서 하는말이 산을 올라가는데 동쪽으로 올라갈 수도 있고, 서쪽으로 올라갈 수도 있고 어디로 올라가든 길이 있다는 겁니다. 그러나 결국에는 꼭대기로 올라갈수 있는 것처럼 신을 향해가고, 영생을 향해 가는 길은 다를 수 있지만 결국 모든 종교가 산을 오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종교의 결론은 같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기독교는 자기들만 옳다고 하니 그것이 문제라는 겁니다.

​논리 구조상 옳은 말을 하기에 제가 논리상 옳다고 인정을 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런데 왜 기독교인들이 기독교만 진리라고 얘기하는지 들어보신적 있냐고 물었습니다.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잠시 설명해도 되겠냐고 물었습니다. 자신들의 얘길 한시간 이상 들어 줬으니 저에게 얘기할 시간을 주는 겁니다. 그래서 제가 그들의 논리로 질문을 했습니다.

​요즘 고등학교 아이들 객관식 문제가 5지선다형입니다. 선생님이 문제를 냈는데 5개가 모두 정답이면 어떤 것을 쓰던지 옳은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뒤집어 보면 답이 원래 없었다는 얘기가 되는 것이지요? 그랬더니 이분들이 그렇다고 동의 하는 것입니다. 그 때 제가 이렇게 얘기 했습니다. 그래서 산을 오를 때 다양한 길로 가는 것이 옳은 얘기 같지만 진리의 영역에서는 스스로 틀렸다고 말하는 오류가 생깁니다. 그래서 기독교는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고 정답은 하나라고 말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그분들이 수긍을 하는 것입니다.

​그분들이 그 시간 수긍을 하긴 했지만, 그분들의 반응이 전형적인 포스트모더니즘인 우리 시대의 현상입니다.

​요즘 사단의 전략은 하나님을 부인하라고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사소하게 만들어 버립니다. 하나님을 우상들과 다르지 않는 사소한 존재로 만들어 버립니다.

​그러나 고린도전서 8:4절은 분명 이렇게 얘기합니다.

“그러므로 우상의 제물을 먹는 일에 대하여는 우리가 우상은 세상에 아무 것도 아니며 또한 하나님은 한 분밖에 없는 줄 아노라”

하나님은 한분입니다. 다른신은 없습니다. 하나님만이 창조주 이십니다. 다른신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것으로 누군가가 만들어낸 신입니다.

신명기 6장4절입니다.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

그 하나님은 성부, 성자, 성령으로 존재 하십니다.

아니 목사님 분명 하나님은 한분 이라고 했는데 성부, 성자, 성령은 세명아닙니까?이에 대한 답이 6번 질문과 이어집니다.

​그래서 6번째 질문이 “하나님의 신격은 몇 위가 계십니까?”입니다.
답 : 하나님의 신격에는 성부, 성자, 성령 삼위가 계십니다. 이 삼위는 한 하나님이며 본질이 동일하고, 권능과 영광이 동등합니다.

​삼위성 – 구별된 세 인격으로 존재한다.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으로 존재 합니다.
일체성 – 서로 구별되는 분이지만 모두 신성을 공요하는 하나로 계십니다.
동등성 – 그렇기 때문에 성부, 성자, 성령은 구별되어 존재 하지만 하나고, 권위나 능력도 동등하다.

​사도행전 5장3절입니다.

“ 베드로가 이르되 아나니아야 어찌하여 사탄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네가 성령을 속이고 땅 값 얼마를 감추었는냐? 땅이 그대로 있을 때에는 네 땅이 아니며 판 후에도 네 마음대로 할 수 가 없더냐? 어찌하여 이 일을 네 마음에 두었느냐 ? 사람에게 거짓말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로다”

이 본문은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사람들이 헌금하니까 자신들도 체면치레 하면서 헌금 하려고 하는 장면입니다. 막상 헌금을 하려고 하니까 아까운 겁니다. 그래서 사람들을 속이고 헌금을 합니다. 이렇게 속이는 것을 “성령을 속였다” 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말씀 말미에는 “하나님께 거짓말 한 것” 이렇게 나옵니다. 성령과 하나님을 하나로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5장18절입니다.

“유대인들이 이로 말미암아 더욱 예수를 죽이고자 하니 이는 아식일을 범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자기의 친아버지라 하여 자기를 하나님과 동등으로 삼으심이러라”

​예수님이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한 것 때문에 사람들이 예수님을 죽이려고 하는 장면입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을 사람들이 하나님과 예수님이 어떤 상태이기 때문에 죽이려고 하는 것입니까? “동등하게”여기는 것이기 때문에 죽이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입니다.

​마태복음 28장19절은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라고 말합니다. 이름들 이라고 말하지 않고 이름으로 라고 말한 것은 삼위성은 갖고 있지만, 일체성과 동등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하나처럼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아버지하나님께 기도합니다. 동등하지만 다른 존재에게 기도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성령을 보내주신다고 하십니다. 동등하지만 다른 존재처럼 이야기 하십니다. 그래서 삼위일체는 삼위성을 가지고 있지만 일체성과 동등성을 가지는 독특한 하나님의 속성입니다.

​이 삼위일체론은 하나님의 고유한 특성이 담긴 것이기 때문에 꼭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데 가끔 삼위일체론을 이상하게 이해하고 계신 분들이 있습니다. 고원영이라는 사람은 한 사람인데 교회에서 목사이고, 아내에게는 남편이고, 아이들에게 아빠다. 이렇게 삼위일체를 설명합니다. 그런데 이건 “양태론”이라는 이단 사상이다. 왜냐하면 위격, 다시말해 존재가 3개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단들은 대부분 이 영역에 잘못되어 있다.

신천지의 이만희씨는 재림 예수라고 한다. 그러면서 동시에 성령이라고 한다. 존재가 두 존재여야 함에도 한 존재이다. 말도 안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교회도 같은 뿌리이기 때문에 이부분에서 걸린다.

​여기서 주의 해야 할 것은 존재로 성부, 성자, 성령만 강조하면 일체성을 잃어버리게 된다. 일체성을 잃어버리면 하나님이 세분 존재하게 된다.

​삼위일체를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 바로 이 지점이다.  

그러나 이것이 하나님의 독특한 속성입니다.

성부, 성자, 성령이 하나이기 때문에 어떤 존재가 더 크고 뛰어나지 않습니다. 권위와 능력이 모두 동등합니다. 삼위 하나님이 하나로 하모니를 이루는 것이 한분 하나님의 속성입니다.

우리 신앙은 이 삼위일체 하나님께 뼈대를 두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을 때 성부만 믿는 것이 아니고, 성자만 믿는 것이 아니고, 성령만 믿는 것이 아닙니다. 성부, 성자, 성령을 하나로 믿는 것입니다.

찬양할 때 삼위일체께 올려 드리는 것이다.

기도할 때 어떻게 합니까? 하나님께 기도하는데 성령의 이름으로 도움을 구하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사도신경으로 신앙고백 할 때도 삼위일체 하나님을 믿는 고백이 들어 있습니다.

세례도 삼위일체 하나님으로 받습니다.

목사가 예배 끝날 때 마다 축복할 때 뭐라고 합니까?

“우리주 예수님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님의 교통”으로 축복을 합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을 믿으며 신앙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7장1절입니다.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이르시되 아버지여 내 때가 이르렀사오니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게 하옵소서”

​아들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는 것입니다.

제 1문이 무엇이었습니까? 사람의 최고의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거?

예수님이 무슨 사건앞에서 내 때가 이르렀다고 했습니까? 십자가 사건입니다. 십자에서 죽는 것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예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입니다. 성령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입니다.

​삼위일체가 영화롭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은 예수님께 십자가지시라고 명령하셨고, 예수님은 순종하셨고, 성령님은 도와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입은 우리가 이제 하나님의 명령을 듣고, 성령의 도우심으로 예수님처럼 순종하며 “자기 십자가를 지는 삶”을 살면 하나님이 영화로워 지십니다. 더불어 우리도 영화로와 집니다.

​십자가지는 삶이란?

남들이 하기 싫은 일을 대신하고 짐을 져주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십자가는 사형틀입니다. 자신이 죽어야 할 영역에서 죽어지는 것이 내 십자가를 지는 것입니다. 그 길은 쉽지 않습니다. 신앙생활 할 때 자존심을 죽여야 하고, 세상 즐거움에 빼앗기는 시간을 죽여야하고, 때론 사람과의 관계도 끊어야 하고, 내 생각도 죽여야 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자기 십자가를 지면 하나님이 영광 받으십니다.

소요리문답7 "하나님의 작정"

소요리문답8,9,10 "하나님의 창조"